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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규정에 갇힌 ‘성적 수치심’…현장서도 개선 목소리[수치스러운 피해자는 없다③]
성폭력처벌법·청소년성보호법 등 조문에 담겨
檢, 법에 규정·법원서 요건 판단 등 고려해 사용
법원도 법률상 규정이 존재해 대체 어렵단 입장
현장서도 “궁극적으로 입법을 통해 바꿔야” 강조
“법, 쉽게 이해되고 적용될 수 있어야…개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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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사재판 법정에서 판사와 검사, 변호사가 ‘성적 수치심’이란 단어를 떠올리며 갸우뚱하는 이미지. ChatGPT를 활용해 생성. |
[헤럴드경제=안대용·양근혁·안세연 기자]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과 재판을 담당하는 법원은 ‘성적 수치심’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법에 규정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법률 조항에 쓰여 요건화 돼 있기 때문에 자의적으로 다른 용어를 사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22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성범죄 판단에 있어 ‘성적 수치심’을 구성요건으로 명문화 하고 있는 현행 법률 규정으로는 성폭력처벌법상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13조),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14조), ‘허위영상물 등의 반포 등’(14조의2), ‘촬영물과 편집물 등을 이용한 협박·강요’(14조의3) 처벌 조항 등이 있다. 또 청소년성보호법에도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 정의(2조 4호),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착취 목적 대화 등’(15조의2) 처벌 조항에 ‘성적 수치심’이 구성요건으로 규정돼 있다. 아울러 조문에 직접 쓰이진 않았지만 형법 245조 공연음란죄와 298조 강제추행죄의 경우 법원에서 ‘성적 수치심’을 성범죄 성립 요건으로 판시(判示)하고 있다.
성폭력처벌법 13조는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에 대해 처벌하는 내용을 규정한다. 조문은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전화, 우편, 컴퓨터,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음향, 글, 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허위영상물 등의 반포 등’, ‘촬영물과 편집물 등을 이용한 협박·강요’ 조문도 이러한 방식으로 성적 수치심을 구성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청소년성보호법의 경우 2조 4호는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에 대해 정의하면서 그 종류 중 하나로 성적 수치심을 요건화 하고 있고, 15조의2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착취 목적 대화 등에 대한 처벌 내용을 정하면서 성적 수치심을 요건 중 하나로 담고 있다.
검찰은 성적 수치심이 법에 규정된 구성요건에 해당하고, 법원에서 성적 수치심을 범죄 성립의 요건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실무에서도 계속 사용 중이란 입장이다. 아울러 대법원이 성적 자유를 침해당했을 때 느끼는 성적 수치심은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 뿐만 아니라 분노와 공포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판결에서 밝혔던 점도 이유로 들었다.
지난 2020년 12월 당시 대법원 형사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이른바 ‘레깅스 촬영 사건’에서 ‘성적 수치심’에 대해 “피해자가 성적 자유를 침해당했을 때 느끼는 성적 수치심은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라며 “분노·공포·무기력·모욕감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판단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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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이상섭 기자 |
재판을 담당하는 법원도 법률상 규정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법원 관계자는 “성폭력처벌법이 ‘성적 수치심’이란 용어를 쓰고 있고 이를 요건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법원에서 다른 용어를 써서 해석하는 것이 맞진 않은 것”이라며 “법 해석을 할 때 구속 요건이나 유무죄 판단에 있어서 법에 있는 용어를 완전히 배제하고 다른 용어로 아예 대체해서 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법원은 상대적으로 자의적 영역에 속하는 양형기준 부분에선 성범죄 가중처벌 기준과 관련해 ‘성적 수치심’ 대신 ‘성적 불쾌감’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성적 수치심’이란 용어가 적절하지 않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22년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형량을 정할 때 판사가 참고하는 요소인 양형인자 중 특별가중인자 부분에서 ‘성적 수치심’이라는 용어를 모두 ‘성적 불쾌감’으로 변경하기로 하고 같은 해 10월부터 적용했다. 당시 양형위는 “성적 수치심이라는 용어는 과거의 정조(貞操) 관념에 바탕을 두고 있고, 마치 성범죄의 피해자가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적 수치심’이라는 용어를 ‘성적 불쾌감’으로 변경함으로써 성범죄의 피해자가 실제로 갖게 되는 피해 감정을 고려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도 결국 법률에 쓰인 용어 자체를 바꿔야 궁극적으로 수사 단계와 재판 단계에서 사건 본질에 집중할 수 있고, 피해자의 호소에 더욱 경청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폭력·성범죄 사건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간부는 “수치심이란 용어 자체를 일상생활에서도 잘 안 쓰지 않나”라며 “성적 수치심이란 말은 가해자 입장에서의 용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도 시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실제 사건에도 적용돼야 하는데 수치심이라는 말 자체가 사전적 뜻에서 벗어나 있다”며 “법 개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일선 지방경찰청의 한 수사팀장도 “수치스럽다는 감정은 범죄피해를 당한 피해자가 느껴야 할 감정도, 말해야 할 감정도 아니다”라며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성적 수치심이란 용어가 ‘성폭력 피해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이구나’라고 강요하고 세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용어가 대체돼야 수사기관은 물론 사법부, 사회 전반에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인식이 개선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폭력·성범죄 피해자 대리 경험이 많은 변호사들은 법 개정을 통해 ‘성적 수치심’을 ‘성적 불쾌감’으로 바꾸는 걸 제언했다. 이은의 변호사는 “부끄러워야 할 것은 피해자가 아니다”라며 “성적 수치심이 아닌 성적 불쾌감이라는 단어가 적확하다”고 강조했다. 심지연 변호사도 “피해자들은 수치심보다는 불쾌하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는 등의 외부표현적 감정을 더 많이 느낀다”며 “‘성적 수치심’이 아닌 ‘성적 불쾌감’이라는 표현을 실무에서 더 자주 사용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안대용 기자 dandy@heraldcorp.com
안세연 기자 notstrong@heraldcorp.com
양근혁 기자 yg@heraldcorp.com
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016/0002633759?type=journalists 2026.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