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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학보] 성범죄 피해자들이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심지연 변호사
성범죄 피해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듣는 말에, 또 경찰 조사 과정에서 ‘네가 (성범죄에 대한) 여지를 준 거 아니냐’는 말에 2차 가해를 당하기도 한다. 결국 피해자들은 가슴 속에 묵혀둔 말을 다 풀어 놓기도 전에 입을 닫게 된다. 심지연(언론⋅15년졸)씨는 피해자들이 다시는 좌절하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성범죄 피해자 전문 변호사’다. 그는 국내 최초의 성범죄 피해자 전문 로펌 ‘심앤이’의 대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피해자 목소리를 온전히 전하기 위해 시작한 일
흔히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성과를 거둔 사람들은 엄청난 소명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심씨가 변호사의 길을 택한 데에는 큰 뜻이 없었다. 기자를 꿈꿔 대학시절 관련 대외 활동을 해보니 생각보다 맞지 않았다. 그후 문과 학생들이 많이 택하는 로스쿨 진학 준비를 시작했다.
심씨가 경험한 이화는 학생회장을 포함한 모든 역할을 여성이 주체적으로 맡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변호사가 돼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여성인 성범죄 피해자들이 처한 상황은 더 열악했다. 성범죄 가해자가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조사를 받는 동안,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혼자 경찰서를 찾아 고소장을 작성하고 조사를 받았다. 국선 변호사에게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여러 사건을 동시에 맡고 있는 국선 변호사가 줄 수 있는 도움은 한정돼 있다. 사선 변호사를 선임해 싸워보고자 하는 피해자는 가해자를 주로 변호하는 로펌을 찾아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실을 마주한 그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 열정을 다해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성범죄 피해자 전문 변호사의 길로 들어섰다.
맨땅에 헤딩으로 시작한 일, 그럼에도 계속된다
심씨가 시작한 성범죄 피해자 전문 변호는 쉽지 않은 길이었다. 2019년 심앤이가 개업하기 전까지는 ‘성범죄 피해자를 대리한다’는 말 자체가 생소했다. 변호사가 피해자 대리를 해봤자 고소장을 써주는 게 다였다. 검찰 조사 과정으로 넘어가는 순간 피해자의 대리인은 검사가 되기 때문이다. 수익과 커리어 측면 모두를 고려했을 때, 재판의 모든 과정에 변호사가 함께해야 하는 가해자 편에 서는 게 훨씬 이득이다. 그는 많은 이들이 택하지 않은 피해자 전문 변호의 길을 “가슴이 뛰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변호사로서 일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할 수 있다면, 성범죄 피해자들의 곁에 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피해자에게 유리한 법과 판례를 많이 분석하고, 쌓아오며 변호사 업계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심씨는 “경찰 조사부터 재판까지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은 직접 맨땅에 헤딩하며 알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심씨는 처음 만났을 때는 어두운 표정으로 사건에 매여 살던 그들이, 재판 막바지에는 밝은 표정으로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성범죄 피해자 전문 변호사를 계속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심씨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의뢰인 ㄱ씨도 그랬다. ㄱ씨는 어린 시절의 피해로 성인이 된 이후까지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심씨와 함께 준비한 재판에서 증인석에 선 ㄱ씨는 트라우마로 인해 과호흡을 겪고 울음을 터뜨렸다. “마지막으로 이것만 하면 우리 이길 수 있어요. 지금 여기까지 온 저를 위해서라도 증언해주세요.” 심씨가 법정에서 ㄱ씨에게 간절히 건넨 말에 진정이 된 ㄱ씨는 10년 전 사건을 생생히 진술했다. 그 진술은 신빙성을 인정받았고, 가해자는 징역을 선고받았다. 사건이 발생한 뒤 고소하기까지 8년, 가해자가 형벌을 선고받는 데까지는 2년의 시간이 걸렸다. “피해자 조사에서 10년 전의 일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면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마음 아팠지만 그만큼 ‘꼭 끝까지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최근에는 피해자가 심앤이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가해자 측은 서둘러 합의를 제안해 온다. 그만큼 심앤이가 성범죄 재판 분야에서 끝까지 싸우는 로펌이라는 게 알려졌다는 것이다. 심씨는 “혐의를 부인하다 더 무거운 형량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아니까 합의를 요청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에게는 온전한 내 편이 필요하다
성범죄 피해 전문 로펌이 생기기 전까지 피해자들은 ‘성범죄 전문’이라며 가해자들을 변호하는 변호사들에게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가해자의 무혐의를 입증하는 판례를 많이 봐 왔기에, 피해자에게 유리한 판례를 찾아주는 데 한계가 있다. 상담을 받으면서도 피해자의 마음이 완전히 편할 수 없다. ‘내 변호사지만 내 편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온전한 편이 돼주는 것이 심씨의 목표다.
성범죄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재판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2년 이상의 오랜 시간이 걸린다. 피해자 혼자 싸우기에는 외롭고 긴 시간이다. 경찰에서 고소장을 적고 피해자 조사를 받는 단계부터 형사 재판에서 증언을 하기까지, 성범죄 피해자 전문 변호사는 이 과정을 고스란히 피해자와 함께한다. 심씨는 피해자들과 상담할 때 그 어떠한 판단이나 평가를 하지 않고 그저 경청한다. 피해자들에게 ‘내 말을 온전히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을 주기 위해서다. 그런 그는 상담을 할 때 “제 입장을 이해해 주셔서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 순간부터 피해자는 편히 마음을 놓고 변호사를 믿을 수 있게 된다. 심씨는 “성범죄 피해자 변호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의뢰인에게 신뢰감을 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의 온전한 편이 돼
그들이 ‘평가를 당한다’는 걱정 없이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저라는 사실에 감사해요
조은지 기자 c7307003@ewhain.net
출처: https://inews.ewha.ac.kr/news/articleView.html?idxno=7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