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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가해자 무죄·감형’ 넘치는 세상에서 “피해자만 변호합니다”
국내 유일 성범죄 피해자 전문 로펌 '심앤이 법률사무소'
심지연 변호사 "피해자 변호 '협조'의 연속…전문성 달라"
"성범죄, 피해자에겐 자연재해…재판 주도적 참여 필요"
"인터넷에 '성범죄 가해자 무죄 받아드립니다', '집행유예로 감형해드립니다' 광고가 가득했습니다. 피해자들은 변호사를 찾는 것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심지연 심앤이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지난 24일 아시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피해자 전문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계기를 이렇게 회상했다.
심앤이 법률사무소는 국내 유일 성범죄 피해자 전문 로펌으로 약 4000건의 성범죄 피해 사례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2019년 개소 이래 가해자 사건 수임은 0건. 경제적 이익만 쫓는다는 비판을 받아온 로펌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이유다.
심 변호사는 이 같은 용기 있는 선택에 대해 "변호사니까 누군가 돕는 일을 하고 싶었다. 어떤 사람을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해봤을 때 가해자들을 위한 변호사 광고가 가득한 세상에서 피해자들은 변호사를 찾는 것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시장이 없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통상 로펌 업계에서는 범죄 피해자 변호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게 진리로 통한다.
기업 법률 시장을 제외하고 전체 법률 시장의 절반 정도가 성범죄지만 가해자 측 수요가 많아 90% 이상이 가해자 변호에 집중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초동 유명 로펌들을 두고 '성범죄 가해자 변호를 먹고 자란다'는 게 그저 우스갯소리는 아니다.
심 변호사는 이에 대해 "수익에 대한 생각은 별로 없었다. 당시엔 하고 싶은 걸 해보자는 단순한 생각이었고, 막상 시작해보니 시장성이 예상보다 컸다"며 "피해자도 숨어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을 이런 시장의 변화가 대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가해자 전문 유명 로펌들과 대등하게 맞서 싸우고 있고, 열정적으로 사건에 임하다 보니 심앤이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가해자 측은 서둘러 합의를 제안해 온다"고 덧붙였다.
불송치됐던 친족 간 성폭행 사건…"진술분석관 활용, 유죄 받아냈죠"
심 변호사는 가장 기억에 남는 성범죄 고소 대리 사건으로 미성년자 시절 사촌 오빠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입고 6~7년이 지나 용기내 찾아온 한 피해자 사례를 떠올렸다.
친족 간 성범죄는 대표적인 '암수범죄(暗數犯罪: 범죄가 발생했으나 수사기관에 의해 인지되지 않았거나 검거되지 못한 범죄)'로 가해자를 처벌하기까지는 수많은 제약이 뒤따른다.
심 변호사는 "특히 친족 성폭행은 참다 참다 이러다 죽겠다 싶을 때 찾아오는 게 특징이다. 마지막 동아줄이라 생각하고 상담을 오는 피해자들이 많아 변호사로서 가장 책임감을 많이 느끼는 사건"이라며 "이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진술이 굉장히 신빙성 있는 진술이었음에도 어린 나이에 피해를 당한 터라 객관적 증거가 거의 없어 처음엔 불송치가 됐다"고 말했다.
심 변호사는 이러한 상황에서 진술의 신빙성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전략으로 '진술분석관' 제도를 적극 이용했다.
성폭력 및 아동학대 피해자 진술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진술분석관의 평가의견서와 100페이지 가량의 이의신청서를 제출해 최종적으로 기소할 수 있었고, 결국 유죄를 증명해냈다.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제3자로 취급받는 것도 전문 변호가 필요한 이유다. 심 변호사는 성범죄 가해자 변호와 피해자 변호는 전문성에 있어 전혀 다른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피해자 변호는 어쩌면 '협조 구하기'의 연속이다.
가해자에게는 재판 과정에서의 모든 자료들이 공개돼 있지만 피해자들에게는 자동적으로 서류를 보내주거나 통보해주는 제도 자체가 없다"며
"그렇기에 재판 단계에서 모든 걸 하나하나 신청해야 하고, 피해자에게 공개되지 않는 자료도 많아 어디까지가 공개되는 자료인지를 시도해보고, 경험화해서 누적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의 DNA 감식 결과 보고서나 범죄 피해자 평가 보고서 같은 경우는 피해자 특유 자료임에도 수시기밀이라는 이유에서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열람공개를 청구해도 허가가 안나 수사관들과의 라포 형성을 통해 알음알음 알아내는 방법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끝으로 심 변호사는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어떤 일들은 이유 없이 일어나는 자연재해 같은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피해자들은 대부분 '내가 저항을 제대로 못했다',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등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집중하며 범죄의 원인을 본인에게서 찾곤 한다. 그렇지만 재판 과정에서는 내가 무엇을 '했는지'를 찾아내야 한다"며 "피해자들이 재판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심앤이 법률사무소는 성범죄 피해 전문에서 분야를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직장 내 사건에 대해 고용노동부 진정 대리까지 확대하고, 학교 폭력·가정 폭력 등 피해 사건 전반에 대한 전문성을 누적시켜 피해자로서 법적 대응이 필요할 때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로펌을 확장시켜 나갈 예정이다.
김채연 기자 dksgh06@naver.com
박세영 기자 sy.p78@asiatoday.co.kr
출처: https://www.asiatoday.co.kr/view.php?key=20240625010014286